뉴스를 보다가 문득 생각난다. 정의라는 게 참 묘한 것 같다. 한쪽에서는 누군가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다른 쪽에서는 법의 심판대가 서 있다. 근래 몇 가지 사건이 특히 인상 깊었다.

1. 법 위에 군림하려 한 자의 최후
얼마 전 대법원이 공수처의 내란 수사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체포 방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는 남은 재판이 7개나 더 있다. 어떤 권력자든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다.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재판소원을 통해 위헌성을 다투겠다고 밝혔다. 법의 심판이 최종적으로 끝날 때까지 여전히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떠오른 역사적 사례가 있다. 1970년대 미국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 당시 대통령 닉슨은 권력을 이용해 수사를 방해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 대법원은 대통령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고, 닉슨은 사임했다. 그때 미국 사회는 정의의 저울이 흔들리지 않음을 확인했다. 우리 사회도 이와 유사한 지점에 서 있는 듯하다. 권력의 유혹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법이 그 위에 군림할 때만이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쉰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 이후 시민사회의 반응은 엇갈렸다. 한편에서는 정의가 승리했다며 환영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적 보복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러한 갈등은 법이 완벽하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 국경을 넘나드는 생명의 무게
미국에서는 이민자 가정에 비극이 일어났다. ICE 총격으로 멕시코 출신 세 아이의 아버지가 숨졌고, 정부는 형사고발과 민사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국경과 법의 경계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 아팠다. 우리 사회도 다문화 가정이 늘고 있는 만큼, 타자의 고통에 공감할 필요가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최근 국내에서도 있었다.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논란이 그 예다. 당시 사회는 난민 수용 여부를 두고 찬반으로 갈렸다. 국경을 넘는 생명의 무게는 단순한 법적 문제를 넘어 인도주의적 고민을 요구한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강제로 집을 떠난 사람은 1억 명을 넘어섰다. 이 수치는 우리가 타자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해준다. 미국의 이민자 사건을 보면서, 법이 생명을 보호하지 못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법은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도구여야지, 죽은 사람을 위한 장식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미국 내에서는 이민 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경의 경계는 지켜야 하지만, 생명의 무게는 그보다 더 무겁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3. 예술과 법의 충돌
문화계에서도 법적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BTS의 미발표곡 ‘스윔’이 미국에서 저작권 소송에 휘말렸다. 누군가의 창작물이 무단 사용되었다는 주장인데, 이 역시 권리와 창작의 경계를 둘러싼 복잡한 문제다. 단독 보도를 보며, 예술가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꼈다.
예술과 법의 충돌은 역사적으로 끊이지 않았다. 20세기 초, 마르셀 뒤샹의 ‘샘’이 전시에서 거부당한 사건은 예술의 정의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다. 뒤샹은 기성품을 예술로 제시했고, 법은 이를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서는 샘플링, 표절, AI 창작 등 새로운 이슈가 등장하고 있다. BTS 사건은 단순한 소송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한국 아티스트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실제로 이 소송은 미국 법원에서 진행 중이며, 결과에 따라 K팝 업계의 저작권 관행이 바뀔 수도 있다. 예술가의 창작 의지를 꺾지 않으면서도 권리를 보호하는 균형점은 어디일까. 이는 법조계와 문화계 모두의 숙제다.
4. 정의의 저울은 영원히 흔들린다
이 세 가지 사건을 통해 드러난 것은 정의의 저울이 쉽게 균형을 찾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권력과 법, 국경과 생명, 예술과 권리 사이에서 저울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하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공정함’에 대한 열망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정의를 각자가 맡은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현대 사회에서 정의는 더 복잡해졌지만, 기본적인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권력의 남용을 감시하며, 예술가의 창작을 존중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법은 중요한 도구지만, 유일한 해답은 아니다. 때로는 사회적 합의와 공감이 법보다 앞서야 할 때도 있다. 결국 정의의 저울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도 흔들리고 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저울의 균형이 결정된다. 법과 정의는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그 잣대를 계속해서 세우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일 것이다. 만약 이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판사출신변호사 같은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순간이다.